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수경 방북 사건 (문단 편집) == 임수경은 누구인가? 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임수경)] 생년월일은 [[1967년]] [[11월 6일]]이며 1988년 [[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|7.7 선언]] 후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1989년에 [[월북|방북]]한 사람이며 '''북한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.''' 2012년 [[민주통합당]] [[비례대표]] [[국회의원]]에 당선되어 한동안 [[더불어민주당]]에 소속되었다가 [[탈북자]] 대학생에 대한 막말 사건으로 '''20대 총선 공천을 못 받고''' 2016년 회기 만료로 정치계에서 물러나 사실상 은퇴하는 신세가 되었다. [[서울특별시]]에서 1967년 11월 6일에 막내딸로 태어났다. 부친 임판호(1933~2021)는 [[서울대학교 법과대학]] 54학번 출신에 1959년 [[경향신문]] 수습 기자로 입사해 [[중앙일보]], [[조선일보]] 등을 거쳐 [[서울신문]] 사회부장까지 지낸 기자로, 1975년 퇴직 후 문교부 대변인과 총력안보중앙협의회 홍보국장 등을 거쳐 1982년부터 [[서울지하철공사]](현 [[서울교통공사]]) 공보실장으로 재직 중이었다. 부친이 공직자 경력이 있고 집에 [[컴퓨터]]가 있었을 정도니[* 그 시대에는 컴퓨터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. 1985년에 처음 나온 삼보컴퓨터가 당시 돈으로 500만 원이었다. 참고로 당시 [[삼성전자]] '''임원'''의 평균 월급이 200여만 원이었다.] 당시에는 제법 부유한 집 출신이었기 때문에 1986년에 [[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]] 불어과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운동권과 접점이 없었다. 월간 <말> 지 1989년 8월호 기사에 따르면 대학생 때도 [[운동권]]과는 무관했고 모친으로부터 [[미스코리아]] 출전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하자 1987년에 [[1988 서울 올림픽|서울 올림픽]] 우정의 사절에 억지로 응모한 후 사진을 찍거나 1986년 [[여름방학]] 때 [[KBS1]] <젊음의 행진>에 출연해서 [[김형곤]]과 짧은 콩트를 하였다. 이런 활동을 통해 임수경은 겉으로는 부잣집 딸내미이자 잘 나가는 아가씨였음을 알 수 있다. 그렇지만 당시 시대가 시대였고 대학생 치고 사회 운동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할 때였기 때문에 점점 사회 운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. 자서전인 <임수경 스토리>를 통해 1984년에 오빠 임용준이 군 복무 중 의문사를 당했기 때문에 학생 운동권에 발을 들인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지기도 하였다. 1987년 불어과 풍물패 '어울'에 합류한 후 정치문화연구회, 13대 대선 공정선거감시단 등 내부적인 [[민주화 운동]]을 주로 했고 당대 주류였던 NL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었다.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완전히 분리가 안 되지만 그렇다고 자진해서 입북할 기미는 없었다. 그런 것이 총학생회에서 일하면서 바뀌었는데 원래 그녀는 [[프랑스]] 유학을 가서 불어과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총학 총무부장의 끈질긴 설득으로 합류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